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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은 '신분증' 아니다?

길영(태민) 2005. 12. 12. 20:59

경찰청 "면허증은 자격증에 불과해 '신형' 교환은 자비로 해야"
법조계 "면허증, 신분증 역할 하고 있어 관리 비용 부담은 국가의 몫"


신원확인 구형 면허증은 안 되고 신형 면허증만 된다?


이동통신사들은 구형 운전면허증으로는 신분 확인이 불가능하도록 약관을 고치고 각 대리점에 이를 알렸다. 하지만 소비자 가운데는 약관이 변경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미디어다음
몇 해 전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모두 갖고 다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이모(28)씨. 두 장의 신분증을 모두 잃어버린 후 한동안 불편함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이씨는 새로 발급받은 주민증과 운전면허증 가운데 면허증만 지갑에 휴대하고 다니며 신분증으로 사용했다.

국가 공인 시험을 치를 때나 국회 도서관 등 공공기관 입장 시에는 물론, 휴대전화 개통과 금융거래 등에 있어서 운전면허증은 주민등록증과 똑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 이동통신사에서 휴대전화 사용계약을 해지하려던 이 씨는 업체 쪽으로부터 자신의 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씨의 면허증이 신형이 아닌, 녹색 줄이 들어간 구형이었기 때문이다. 신형 면허증은 사진이 2개 사용되고 위변조 방지용 홀로그램이 들어가 있다.

이 같은 해프닝은 경찰청이 지난 7월 구형 면허증의 위조 위험성을 들어 정보통신부를 통해 이동통신사에서 고객의 신분을 확인할 때 구형운전면허증 사용을 지양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발생한 것.

경찰청의 요청에 따라 10월 초 이통사는 구형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약관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이런 사정을 몰랐던 이 씨와 같은 소비자들은 대리점에 두 번 걸음을 해야 하는 등 불편함을 겪었다.

구형 면허증의 위변조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금융권에서도 구형 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반면 일부 금융권은 여전히 구형운전면허증을 신원확인에 이용하고 있어 시민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경찰청 “구형 면허증 신형으로 바꾸는 비용 개인이 부담해야”
시민들 “신원확인 기능은 국가가 보장해야지 비용 왜 국민한테 떠넘기나”



구형 면허증()과 신형 면허증()
이처럼 위변조 가능성 때문에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통사나 은행들은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하고 싶다면 직접 신형 운전 면허증을 발급 받아오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위변조방지기능이 추가된 신형 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발급 비용 5000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기존 면허증이 위변조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 당연히 국가가 신형 면허증을 무료로 발급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경찰청의 조치에 불만을 표시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도로에서 운전자로부터 면허증을 제시받았을 경우 경찰들은 그 자리에서 조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형 면허증도 ‘자격증’으로서의 본래 임무는 할 수 있다”며 “이통사에서의 사용은 각 업체에 ‘지양’ 요청을 한 것이지 사용 ‘불가’를 알린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단지 사용에 있어 주의를 당부한 것인데 이통사 자체적으로 약관을 변경해 버린 것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신분증에는 주민등록증도 있고 여권도 있다”며 “애초부터 면허증은 경찰청에서 ‘자격증’으로 발급한 것이지 신분증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 “면허증은 신분증”, “신원확인 기능에 따른 위험방지는 국가의 몫”

그렇다면 경찰청의 주장대로 면허증은 정말 신분증이 아닐까.

경찰청의 주장과는 달리 법원은 면허증을 '신분증'으로 간주하고 있다. 2001년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면허증은 운전을 허락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공문서로서 ‘자격 증명’과 동시에 ‘동일인 증명’의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운전면허증의 기능을 ‘자격증’으로만 국한했던 기존의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단순히 ‘자격증’으로 국한했던 기존 판결은 운전면허증의 신원 확인 기능이 보편화돼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나라’ 전진우 변호사는 “경찰청이 면허증은 자격증이라는 이유로 신형 면허증의 발급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많은 비난을 받았던 기존의 판례를 고집하는 것으로 새롭게 바뀐 대법원의 판단과는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또 “운전면허증은 사진과 주민번호가 적시돼 있기 때문에 성격상 신원확인의 기능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며 “개인에 대한 신원확인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영역으로 위변조로 인해 신원확인에 따른 위험이 있다면 그에 따른 관리와 비용 부담은 국가가 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