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이란?
1948년 6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에서 수도경비사령부라는 명칭으로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보병 제1연대, 보병 제17연대, 기갑연대와 포병단을 두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49년 9월 옹진지구에서 부대 창설이후 첫 전투를 치루었으며 6·25전쟁 발발로 남으로 이동 중인 1950년 7월 5일 부대명칭이 수도사단으로 바뀌었다.
6·25전쟁 중 수도사단은 의정부방어전투를 비롯하여 안동지구전투, 경주지구방어전투, 원산·함흥·청진·길주·혜산진의 수복작전,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전투 등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영남 및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 등을 수행하여 명성을 떨쳤다. 1953년 9월에는 용맹성과 감투정신을 상징하는 맹호를 부대 표지(標識)로 제정하였다.
1965년 8월 국방부로부터 파월전투사단으로 지명되고, 사단명칭이 맹호부대로 명명되었으며, 1965년 11월 초까지 예하 각 부대를 베트남 의 전술책임지역에 배치·완료하였다. 이후 맹호부대는 수많은 각급제대작전을 전개하여 자유베트남군의 평정사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피해지역의 재건사업을 원조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베트남에서의 임무를 완수한 맹호부대는 1973년 2월 3일부터 3월 10일에 걸쳐 파월 7년 5개월만에 완전 귀국하였으며, 같은해 3월 21일 부대명칭이 수도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뀌었다. (출처: 네이버사전)
* 초대 사단장 : 대령 권준
* 모체부대(창설시) : 수도경비사령부(1949. 06. 20. 서울 용산에서 창설)
* 예하부대(창설시) : 보병 제1연대, 보병 제8연대, 보병 제18연대
* 예하부대(창설후) : 보병 제2연대, 보병 제17연대, 기갑연대, 포병단
-1950년1월 번개 작전시 3사단 26연대 작전배속전환해서 수기사18연대와 3사26연대가 소속변환됨.
* 한국전쟁 개전시 부대위치 : 창설 전
* 한국전쟁 휴전시 부대위치 : 경기도 포천(보병 제1연대, 보병 제26연대, 기갑연대)
* 주요 전공 및 기록 :
1950. 08. 14. 안강 - 기계지구 전투에서 북한 인민군 2개사단(제13사단, 제15사단) 격퇴
1952. 07. 07. ~ 1852. 10. 14. 수도고지 및 지형능선전투
1953. 07. 13. ~ 1953. 07. 27. 금성지구 전투
★ 편제
4개의 여단 - 사단사령부 예하4개의 여단 - 1여단 / 26여단/ 기갑여단/ 포병여단
및 직할대대 (방공, 공병, 정비, 보수, 항공, 의무, 통신, 수색, 헌병, 화학, 정찰, 교육, 사단본부)가 있음.
1여단 - 비호부대 (102BN,133BN,17TK)
26여단 - 혜산진부대 (103BN,35TK,8TK)
기갑여단(1기갑여단) - 번개부대(101BN, 122BN, 18TK)
포병여단 - 10FA, 60FA, 61FA, 808FA
★ 대한민국 전투력 0순위 -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부대
○ 맹호부대는 최초 해외파병부대이기도 하며 한국전쟁 당시 최초의 38선 돌파 부대인 혜산진부대가 예하부대로 있습니다. 또한 故 강재구 소령이 근무하던 부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병 교육대 강당은 이름이 재구관입니다. 더불어 한국 최초의 기계화 사단이며 다른 사단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화력과 전투력을 과시합니다. 맹호부대는 전직 군사정권들이 수기사를 얼마나 무서워 했으면 수기사단장이 자신들이 했던것처럼 군사 쿠테타를 일으킬것을 염려해 견재하려고 20사단을 기계화로 재편했다고 하는 후문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아닌말로 수기사가 들고 일어나면 대한민국은 끝납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화력은 모두 수기사에 결집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면 다른 부대는 모두 전진배치 되어 북괴의 남하를 저지하지만 수기사만큼은 후방으로 퇴각하여 공격준비를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사단입니다. 다른 사단은 모두 방어형 사단이지만 수기사 만큼은 오로지 공격을 위한 사단입니다. "천하제일 맹호부대" 이게 수기사 사단 정문 현판에 걸려 있는 글귀 입니다.
○ 대한민국 유일의 기동군단 예하 전투력 서열 0순위, 세계 10대 강군 7위의 전투력 (월남전때 성조지가 선정한 세계10대 강군으로 맹호부대가 뽑혔다고 함)
○ 육군 최초 창설부대/최초 해외파견부대 - 국군의 모체부대로 1사단보다 먼저 생긴 대한민국 최초 부대. 사단번호가 존재하지 않게된 결정적인 이유임
○ 보병사단과 기계화사단의 화력은 천지차이라고 할수있음. 1개의 기계화사단을 방어 하려면 4개의 보병사단이 필요하다고 함.
○ 대한민국 기계화사단 중 으뜸 -수기사(맹호), 20사(결전), 30사(필승),11사(화랑), 26사 (불무리)
(내용참조: rjs8896님의 네이버 지식인 )
★ 월남전에서의 맹호부대
*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특히 "맹호"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여 병력과 장비등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라! (호지명) "
수도사단은 비둘기부대 파월에 뒤이어 1965년 6월14일과 6월26일 2차에 걸친 월남공화국 수상의 전투부대지원 요청에 의거, 65년 8월13일 제 52회 임시국회 제 11차 본회의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역사상 최초로 전투 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4주간에 걸친 교육훈련을 마치고 1965년 10월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 1965년10월 22일 맹호부대가 최초로 월남 퀴논에 상륙하였다.
맹호사단은 1965년 11월15일부로 미101공수여단 및 미해병 7연대로부터 1,200평방km의 전술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1965년 10월29일 풍손부락에서 최초로 서전을 장식한 이래 중대수색작전, 대대규모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하던중1966. 3. 23 ~ 3. 26일간에 "고보이" 지역에서 1연대와 기갑 연대를 투입,최초의 사단규모작전인 맹호5호작전을 실시하였다. 맹호 5호작전이 끝나자 10여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여 오던 베트콩을 소탕하고사단전술 책임지역을 1,400평방 킬로미터로 확장시켰다.
* 맹호의 용맹을 알린 9중대의 "둑코전투"
맹호9중대는 캄보디아 국경부근인 둑코지구에서 8월 9일 야간에 증강된 월맹군 1개대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6시간의 격전끝에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격퇴시켜 대승하였으며 전술적인 면에서 중대 전술기지 개념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맹호9중대의 중대방어전투 역시 한국군의 우수성과, 미국군이 비웃던 한국군 중대전술작전의 우수성을 증명한 대승이었다.)
세계전사에 새 모습을 드러낸 한국군 고유의 중대 전술기지 운용개념을 확고히 입증한 "둑코전투" 승리는 이후 청룡부대의 "짜빈동대첩" 이 있기까지 월남전사상 최고의 대승으로서 한국군의 용맹성을 세계만방에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자유우방의 각나라 군부대 전술,전략 전문가와 지휘관들이 한국육군 맹호부대를 직접 방문하여 중대단위 전술기지 운용과 대민사업 활동사항 등을 답습해 가서 교훈을 삼아「무서운 한국군」이란 대명사가 되었고 밀림(정글)의 왕자로서 맹호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월남 중동부 해안 Qui Nhon 에 위치한 수도사단 맹호부대는 한국군 전투부대의 핵심부대로서 이곳에 침투하고 있는 월맹군 제 18연대를 중심으로한 지방 VC부대들을 섬멸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간 많은 작전중 둑코(Duc Co) 전투, 맹호 6 호 작전, 오작교 작전, 맹호 12 호 작전, 혜산진 9호 작전, 비호 23호 작전, 창군기념작전, 월계작전, An Khe Pass 작전등은 맹호 부대가 남긴 혁혁한 작전으로 상승 한국군의 기백을 널리 과시한 것이다.
맹호파월일지
* 파 월 : 1965. 10. 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5. 10. 22 월남 퀴논에 상륙
* 참전기간 : 1965. 10. 22 - 1973. 3. 7
* 참전군인 : 114,902명 (장교 7,652명, 사병 107,340명)
* 희 생 : 전사 2,111명 (장교 186명, 사병 1,925명)
* 부상 4,474명(장교 246명, 사병 4,228명)
* 전 투 : 175,107회 (대부대 전투 521회,소부대전투 14,586회)
* 대민사업 : 퀴논 지역에 문화센터, 학교건물, 공원 팔각정을 건축하는 등 많은 대민지원사업을 벌였으며, 1972. 4. 18부터 5. 15까지 약 한달동안 파월 한국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안케패스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출처]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 or 제 0 기계화 보병사단 (참조 및 각색)
사진출처: 수기사 전우회/ 유용원의 군사세계/ 디펜스코리아 (문제되는 사진있으면 지우겠음 ^^)
1979년 12 · 12 사태 떄, 진압군측 최고지휘관 이건영 3군 사령관의 육사 동기생인 최영구 중장 예하 사단으로서, 신군부의 반란진압을 위해 수도서울로 출동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기하던 중 지휘부가 무력화되며 진압출동이 와해됩니다. 12·12 군사반란 당시의 행적을 통해 "좋은지휘관이 좋은부대를 만든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 현재 맹호부대는 대한민국 육군의 가장 강력한 정예부대로서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는 최강의 "기계화부대"이다. 만일 남북간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인민군의 최우선적 관심과 공격목표는 "맹호"일 것이 틀림없고, 우리의 맹호는 반드시 한 입에 적의 목줄기를 물어뜯어 "조국통일"의 선봉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